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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물려주고싶어요" - 박선주부회장(법무법인 바른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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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908회 작성일 10-10-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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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니라 꿈을 물려주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2009.01.06 03:12 / 수정 2009.01.06 09:08

장학금 대물림 운동 펴는 ‘원조 장학생들’
60~70년대 도움받아 공부 … 후배 지원 나서
장학회·대학 캠페인에 갈수록 동참 늘어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이 빚을 평생 갚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건국대 교육대학원의 오성삼(61) 교수. 그는 2일 정수장학회 수혜자 모임인 상청회에 20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건국대 교수가 된 직후인 1993년에 월드비전에 7000달러를 내놓은 뒤로 두 번째 기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와 함께 시골 고아원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빨래며 청소를 하는 대가로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고아원에서 산다고 놀림을 받을 때마다 그는 책을 집었다. “없는 사람일수록 공부만이 희망”이라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66년에 어렵사리 건국대학에 붙었다. 입학금을 마련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등록을 포기하려 할 때쯤 고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삼아, 등록금 해결됐다.”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이 당시 거액인 입학금 7만원을 마련해줬다는 소식이었다. 꿈같았다. 빈 강의실에서 먹고 자도 행복했다. 81년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결국 교수라는 꿈을 이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오 교수처럼 ‘장학금 대물림’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60~70년대에 가난한 소년들을 일으켜 세웠던 장학금이 가지에 가지를 쳐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월급의 일부를 떼서 장학금을 마련하는 나눔의 아름다움을 실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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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가 소속된 상청회는 최근 ‘장학금 물려주기 운동’으로 이름 붙인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다. 그와 비슷한 때에 도움을 받은 장태휘(60) 울산대 교수, 강용찬(61) 목원대 교수 등 1000여 명의 회원이 함께 했다. 이 단체가 80년대 초반부터 모아온 봉사기금 1억6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가난한 고등학생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자는 것이다. 올 5월에 첫 도움을 받을 고등학생 10여 명을 뽑을 참이다. 지금껏 이 단체에 1200만원을 기부한 기업인 박건준(60)씨는 “우리가 받은 만큼 돌려주자는 것”이라고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그 역시 기성회비 300원이 없어 초등학교 때부터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간신히 배움을 이어나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받은 56만2000원의 장학금 덕분이었다.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되돌려주겠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건국대도 올해부터 장학금 대물림 캠페인에 나서기로 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등록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속출하자 기획한 사업이다.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동창들이 잇따라 장학금을 내놓은 것이 다른 동창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법대 출신의 박선주(62) 변호사는 98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장학기금 1억3000만원, 발전기금 1억4000만원을 모교에 내놨다. 그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 받은 100만원의 장학금 덕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2003년부터 장학금 되돌려주기 운동을 벌여온 영남대는 지금까지 700여 명의 동창생들로부터 5억8000여만원을 모은 성공 사례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부자가 됐다고 바로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니다. 한국 사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희망의 신호”라고 평가했다.


정선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