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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후원회 릴레이 인터뷰(2) - 김영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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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361회 작성일 11-05-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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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전당 후원회 릴레이 인터뷰 - 김영수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이사장 
  
    : 문화예술에 ‘꿈’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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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박선주 신임 후원회장 인터뷰를 시작으로 앞으로 예술의전당 후원회원을 소개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마련한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국회의원,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 예술의전당 후원회장 등을 역임한 김영수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이사장을 만나보았다.

지난 호 박선주 신임 후원회장 인터뷰를 시작으로 앞으로 지면을 통해 예술의전당 후원회원을 한 명씩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6월의 주인공은 김영수. 다채로운 그의 이력을 설명하려면 이름 석 자 앞에 과연 어떤 타이틀을 붙여야 할까. 검사, 제14대 국회의원, 제33대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박물관회 회장, 예술의전당 후원회장, 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 연세대 행정학 석좌교수, 대종상 조직위원장….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동시에 하나같이 어깨가 무거운 중책이다.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까 생각하며 그의 앞에 섰다. 일단 근황부터 물었다. 현재 그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많아서다.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바로 알고, 국제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규적으로 청소년 문화포럼도 열고 있고요.” 성인문화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성인문화를 선도해나가는 대등한 위치에서 청소년 문화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요지. 이를 위해 청소년문화연구소에서는 <한중일 청소년 문화제>도 열고 잡지도 발간 중이다.

김 이사장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아내의 공이 크다. 그의 위트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란히 다녔던 데이트 코스”가 미술관과 공연장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과 문화부장관을 거치며 순수 애호가에서 문화행정의 달인이 되었고, 장관 퇴임 후 한국박물관회 회장, 예술의전당 후원회장, 대종상 조직위원장 등을 맡으며 문화예술 현장에 남아 힘껏 도왔다. 올봄엔 유네스코 지정 ‘춤의 날’ 조직위원장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문화부장관을 하면서 가장 잘한 일로는 예산 증액과 한복의 생활화를 꼽았다. “예산이 약 40퍼센트 증액되어 처음으로 1조 원이 넘었어요. 문화예술계에 좀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게 되어 기뻤죠.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것 중에 중요한 것이 복장문화인데, 국회의원들이 국회 개원식을 할 때 한복을 입고 등원하면 얼마나 멋있겠어요. 한복의 대중화ㆍ생활화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어지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는 문화행정가로 일하며 문화예술계의 열악한 상황을 알게 됐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도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등의 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원회 운영이 ‘인맥 위주다’라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고액기부자를 모을 때는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점점 후원회 활동이 알려지고 기부문화가 한 단계 성숙되면 자발적인 가입자도 늘어날 것이고 선진화되겠지요.”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누군가를 공연에 초대하고 후원회 활동에 대해 알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한다. 사실 공연ㆍ전시를 많이 보는 것 자체가 최고의 후원이라고 덧붙이며 자신이 후원회장으로 4년간 몸담은 예술의전당 후원회에 대한 많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300만 원ㆍ500만 원의 기부금을 내도 평생회원이 되었던 기존 제도에서 연회비가 생기고 공연ㆍ전시 무료 초대, 아카데미 할인, 후원회원 전용 휴게실이 생기는 등 예우사항이 늘어나며 후원제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일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후원회 구성원 자체도 좀더 젊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희를 앞둔 그가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장관할 때의 꿈은 무사히 모든 공무를 끝내고 나이 들어 친구들에게 돌아갈 때 그들이 환영해주고 ‘수고했다’ 평가해주는 것이었죠. 이미 그 꿈은 이뤄진 것 같고, 이제는 해오던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에게는 문화예술이 곧 취미고 봉사활동이 곧 특기다. 다양한 봉사를 실천하고 있지만 애착 가는 곳 중 하나는 ‘제천영아원을 사랑하는 모임’이다. 제천에서 지청장을 하던 시절, 한 외국인이 처녀의 몸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미국 위스콘신 주 출신의 제인 화이트(Jane white) 여사였고 이제는 제천백씨의 시조가 되었다. 1988년부터 조직을 꾸려 도움을 주었고, 요즘에도 1백여 명 되는 아이들과 음악회도 가고 농구장에도 가고 운영자금을 기부하기도 한다.

그의 이름 앞에 달린 수많은 타이틀 중 스스로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어려운 이야기라며 입을 뗐다. 하나하나 모두 보람 있는 일이어서 고를 수 없지만 역시 “문화예술현장에 남아 힘이 된다”라는 칭찬이 가장 듣기 좋다고 한다. 공직 생활을 마치고 대형 로펌회사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도 많았지만 변호사 활동에 전념하게 되면 문화예술계와 거리가 생길까 봐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정치를 꿈꾼 적도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집중할 뿐이다. 이보다 더 넓고 풍요로운 ‘일선’이 또 있을까?


글 _ 김수정 (예술의전당 홍보부)
photoⓒ 박경복 (예술의전당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