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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 김포에 클래식 공연장을 지은 사연? - 신영애 부회장(아트실비아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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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3,310회 작성일 13-09-2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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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톨릭문화원' 만든 건축가 김석철·교보생명 창업주 맏딸 신영애씨]

-'건축계의 거물' 김석철
서울과 개성의 중간 지점인 김포… 통일 후 행정수도로 늘 꿈꾸던 곳
癌투병 중에도 혼신 다한 역작… 작지만 클래식 명소 될거라 확신

-'독실한 가톨릭 신자' 신영애
아버지 영향으로 문화예술에 관심… 물려받은 유산, 사회에 기여하고파
최고 음향을 지닌 실내악홀 꿈꿔… 가족위한 주말 공연 많이 마련했죠

경기도 김포, 한강이 바라다보이는 강변에 가을 들녘만큼 아름다운 황금빛 공연장이 들어섰다. '한국가톨릭문화원'이란 문패를 달고 오는 28일 개관 공연을 갖는 이 아담한 건물은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건축가 김석철(70)의 작품이다.

암 투병 중인 건축계 거물 김석철(명지대 석좌교수)이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역작으로 5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선택한 건, 그곳이 '김포'였기 때문이다. "네 번의 수술 후 사실상 일을 놓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찾아와 간곡히 부탁하더군요. 부지가 김포에 있다고 해서 솔깃했지요. 통일 한국의 행정 수도로 나는 서울과 개성의 중간인 김포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요. 한강을 가로지를 경우 개성과의 거리가 불과 2㎞밖에 안 돼요. '땅이나 한번 보자' 싶어서 갔더니 내가 꿈꾸던 바로 그 땅이었지요."

김석철을 설득한 클라이언트가 신영애(64) 아트 실비아 재단 대표다. 교보생명 창업주인 고(故) 신용호의 맏딸이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누나로 전업주부로만 살아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지만, 생전에 선친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오 보타의 설계로 교보강남타워를 건축할 당시에도 아버지와 함께 건축 전 과정에 참여할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다고 했다.

지난 12일 한국가톨릭문화원‘실비아홀’에서 김석철(왼쪽) 교수와 신영애 아트 실비아 대표가 만났다. 언론 노출이 처음이라는 신 대표는 수줍어하면서도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김 교수는“벽돌, 타일 등 건축 재료를 고르기 위해 신 대표가 나보다 더 자주 시장과 현장을 다녔다”며 혀를 내둘렀다. 신 대표는“개관 기념 공연에 색소폰 쿼르텟의 이색적인 연주가 있으니 꼭 보러 오시라”고 했다. /채승우 기자
정작 신씨는 고개를 저었다. "건축 문외한이에요. 김석철이 누구인지도 몰랐던걸요(웃음). 그저 밥 먹는 것보다 공연 보는 것이 좋았고, 우리 집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이 예술의전당이라 죽기 전 부모님 유산으로 사회에 예술로써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신씨가 김포에 클래식 공연장을 지어 봉헌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7년 전이다. "인천교구 박유진 신부님과 '문화·예술을 통해 복음을 구현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서울을 벗어난 곳에 문화 공간을 만들어보자 한 거죠. 작지만 국내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실내악홀을 꿈꿨어요."

신 대표의 세례명을 따서 이름 붙인 메인 공연장 '실비아홀'은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의 중간 형태다. "내부는 서양 음악홀의 고전적 형상을 취하되 비례나 느낌은 동양적인 것으로 하자, 연주자가 맨 뒷좌석 청중의 표정을 볼 수 있을 만큼 객석과 무대가 일체가 되는 공간을 만들자는 데 둘 다 의견이 일치했지요. 건물 외관에 대해선 약간의 이견(異見)이 있었어요. 신 대표는 서양의 고전 스타일을 원했지만 난 김석철 스타일을 고집했거든요."

신영애씨가 얼굴을 붉혔다. "그냥 '멋있게 지어주세요'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제 의견을 솔직히 말씀드린 건데 지금 생각하면 주제넘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돌아보니 3년에 걸친 아주 즐거운 건축 여정이었어요."
 
신영애씨는 문화와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버지 덕분이라고 했다. "사업으로 늘 바쁘셨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자식들과 식사를 하시면서 가르침을 주셨어요.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식들 옷차림까지 일일이 조언하셨죠. 세계 3대 테너 내한 공연은 꼭 봐야 한다며 데리고 가셨던 기억이 생생해요. 집안 커튼도 당신이 직접 고르시고, 제가 약혼식 때 입으려던 한복도 색깔이 별로라며 직접 주단집에 가셔서 천을 끊어오실 만큼 섬세하셨죠. '자식 앞에 부끄러운 돈은 단 한 푼도 번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어서 저는 참 행복한 딸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처음 향수를 사준 남자이기도 한데, 돌아가시기 전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못 해 드린 게 못내 후회돼요."

여의도,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 보문단지부터 쿠웨이트 자하라 신도시 등 국내외 수많은 도시 설계를 해 온 김석철 교수에게 "그간의 작업들에 비하면 가톨릭 문화원은 너무 작은 집이 아닌가" 물었다.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과 하나하나의 작품을 짓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었어요. 예술의전당 2500석 공연장이나 500석의 가톨릭문화원이나 결국은 문화를 창출해내는 귀중한 토대라는 점에서 같지요. 지난해 골조가 완성된 뒤 첫 음향 실험을 했을 때 세계 최고라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 음악당보다 나은 홀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세계적인 명연주자들이 많이 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신 대표는 "이 홀이 실내악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공연장"이라며 "가족이 나들이하는 길에 들러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주말 공연을 많이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신영애씨가 김 교수의 귀에 대해 이야기했다. "뒤늦게 알았어요. 교수님 왼쪽 귀가 선천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걸요. 의아했지요. 귀가 불편한데 어떻게 콘서트홀을 설계하나. 그런데 음악홀은 수학으로 만드는 것이지 감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고, 또 마음으로 듣는 소리가 더 정확하다고 하시더군요. 청력을 잃고도 위대한 교향곡을 만든 베토벤을 떠올렸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