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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후원회 릴레이 인터뷰(10) - 허 참 자문위원(전.상아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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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4,446회 작성일 12-02-2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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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딸들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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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 후원회 릴레이 인터뷰에서는 상아제약의 창업주인 허참 전 회장을 만났다. 그는 피아니스트 허승연, 바이올리니스트 허희정, 첼리스트 허윤정으로 이뤄진 자매 트리오인 허트리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작은 살롱 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 연주홀로 꾸민 자택에서 만나 예술 향기 짙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던 날, 방배동 자택에 들어서자 허참 전 회장은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곧 커피콩 가는 소리가 들렸다. “추운 길 왔으니 핸드드립 커피 한잔 대접하겠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 진한 커피 향기가 한 가득 퍼져갔다. “한 3년 됐나,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면 강릉으로 달려가기도 했죠. ‘테라로사’라고, 커피 마니아들에겐 유명한 집이 있는데 그곳을 오고 가다 너무 멀어 핸드드립을 배웠어요. 과테말라 안티구아도 좋아하고, 사이폰 드립커피도 좋아해서 삼청동 단골집에도 종종 갑니다.” 그의 집 구석구석은 이야깃거리로 가득했다. 작은 살롱 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 연주홀로 꾸민 자택에선 하우스콘서트가 종종 열렸고, 연습실로도 쓰였다. “지금이야 예술의전당 주변에 스튜디오가 많지만 90년대만 해도 흔치 않았습니다. 낮 리허설을 마친 음악인들이 저녁 공연 전에 잠시 들러 차도 마시고 방에 들어가서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연습도 하는 아지트였죠. 6개월을 기다려 구입했다는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챔발로가 홀 가운데 놓여 있었고, 거실 한편에 놓인 사인북엔 국내외 유명 연주자의 이름이 빼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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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리오’를 빼고 그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을까. 허트리오는 피아니스트 허승연, 바이올리니스트 허희정, 첼리스트 허윤정으로 이뤄진 자매 트리오다. 허트리오를 탄생시킨 이는 바로 그들의 아버지 허참. 자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굴해 정상의 반열에 오른 예술가로 성장시켰다. “처음부터 음악을 시킬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문화적 감성을 갖는 것이 딸들을 아름답게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 아이들이 네댓 살이 되면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한 번 가족회의를 열었죠. ‘평생 음악을 할 것이냐?’라는 물음을 던지니 아이들은 ‘음악인생을 살겠다’라고 자신 있게 답하더군요. 아내는 딸들에게 각서까지 받았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지금의 결정에 책임지겠다는 내용이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도의 길을 걷게 된 딸들. 허트리오로 활동 중인 세 딸을 제외하고도 첫째 진선씨는 챔발로를, 다섯째 인정씨는 발레를 전공했다. 언니가 유학길에 오르는 것을 본 동생들은 차례로 같은 길을 걸었다. 국제전화도 하기 힘들었던 시절, 딸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대신하기로 했고 테이프에 목소리를 녹음해 육성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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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농사가 풍년이니 주변에서 자녀교육 노하우에 대해 많이 물어볼 것 같았다. 그의 지론은 확고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열 번, 백 번 변합니다. 잘한다고 도취되지도, 못한다고 실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고치려고 애 써도 안 되죠. 믿고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스스로 변합니다. 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가는 백 퍼센트 부모의 영향이죠. 부모의 인간성, 가치관, 사고방식, 삶의 태도… 이런 것을 통해 아이들은 삶을 배웁니다. 이상적인 것을 강요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비뚤어질 수 없습니다.


아버지 허참의 모습에서 벗어나 기업인 허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는 30대에 상아제약을 창업해 30년 넘게 혼신의 힘을 다해 기업을 일구었다. ‘인성제일주의’가 최우선 경영철학이었다. 상아제약은 작지만 강한 회사였고 대중에게도 친숙했다. 외형적으로 덩치를 키울 수 있었지만 성장을 위한 경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전략적으로 인재를 뽑아 쓰면 그만이라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능력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인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죠. 교육, 엄청나게 시켰습니다. 사람 뽑아 실컷 키워놓으면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 해가서 ‘교육기관’이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죠.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으로 가는 것이니 국가재산이라 생각했습니다. 용병술이 약하다는 평가도 들었지만 지금도 제 생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용병술이죠.


평생을 투신한 사업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어려웠지만 상아제약을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먼저였다. 문화예술을 수용할 수 있는 감성을 키워가는 것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예술 속에서 살면서 감성을 키우면 건강은 따라온다고 믿었다. 그는 ‘예모아’의 주축 멤버이다. 예모아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아름답게 삶을 가꾼다’라는 의미다. 상표 등록까지 했다. “예술의전당 후원회가 처음 시작될 때 일 년에 두 번씩 음악회를 열었는데, 그 이름에 ‘예모아’를 사용했습니다. 통상권을 설정해 예술의전당만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했죠. 지난 연말에도 <후원회 예모아 로툰다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살롱 음악회’는 9년째 이어오고 있어요. 문화예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발레와 클래식 음악회, 연극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공연장을 찾습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차려 입는 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꾸밈없는 평소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했다. 덧붙여 어디 후원자라는 것도 내세우고 싶지 않다고 부탁했다. 벽에 붙은 허트리오의 공연 포스터와 딸들이 어릴 적 손에 잡았던 악기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딸 다섯이 모두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어 음악가들을 보면 남 같지가 않다는 그의 웃음에선 아버지의 사랑이 전해졌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_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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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복 (예술의전당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