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연광철&사무엘 윤> > 문화예술가 소식

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가 소식

<2012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연광철&사무엘 윤>

페이지 정보

조회조회 3,357회 작성일 12-10-29 14:17

본문

<공연리뷰> 2012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이중 배역으로 바이로이트를 구원한 두 한국인 베이스'

(바이로이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바이로이트 축제의 구원자'.

   독일 현지 언론은 한국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을 그렇게 불렀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만을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축제의 2012년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타이틀 롤이 개막 4일 전에 전격 교체되었다. 그런데도 연습 없이 공연 팀에 합류한 주역 사무엘 윤이 바이로이트 관객의 폭풍 같은 갈채와 환호를 받으며 가장 중요한 개막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의 세 번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공연은 지난 6일 오후 6시에 시작됐다. 3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지만 바이로이트에서는 이 작품이 중간휴식 없이 2시간 15분간 공연된다.

   틸레만은 '젠타(여주인공 이름) 모티프'를 긴 호흡으로 끌며 긴장을 고조시켰고, 치밀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요란한 파도와 폭풍우의 소용돌이를 제어했다. 특히 무대 위 가수들에게 충분한 해석의 자유를 주면서도 놀라운 집중력과 밀도로 극을 이끄는 틸레만의 능력이 돋보였다. 개막공연 때 일부 관객이 야유를 보내긴 했지만 연출가 얀 필립 글로거는 설득력 있는 콘셉트로 극을 이끌어갔다.

   대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막에서 바다나 범선은 보이지 않고 무대는 복잡한 기계회로로 채워진다. 빛의 속도로 바뀌는 계기판의 숫자들은 제품 생산량을 상징하고, 유령선 선장은 말끔한 양복에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일회용 종이 커피잔을 든 채 무대에 등장한다. 신들에게 도전한 오만함에 대한 벌로 저주를 받아 죽지 못하고 바다를 떠도는 네덜란드인을 현대의 세일즈맨으로 바꿔놓은 것.

   예술가로 성공하려는 희망을 품고 파리로 간 젊은 바그너의 좌절과 생존의 위기, 그리고 프랑스 초기사회주의 이상에 매혹된 당시의 바그너를 반영한 이 연출은 바다의 폭풍우 대신 우리를 둘러싼 제어할 수 없는 속도의 현실, 역동적이면서도 인정사정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 현실 속에서 무감각해진 주인공은 독창적이고 예술가 기질을 지닌 여주인공 젠타(아드리안 피에총카)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잃었던 인간적 감정을 되찾지만, 오해와 감정의 왜곡으로 인해 사랑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동반자살로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소비사회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이 독특한 사건은 곧장 상품화된다. 두 주인공의 에피소드는 선풍기 회사의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로 활용되고 이들의 사랑은 잊힌다.

   이날 공연에서 뜨거운 갈채를 받은 젠타 역의 피에총카와 네덜란드인 역의 사무엘 윤은 둘 다 명징한 고음과 탄탄하고 에너지 넘치는 저음으로 관객을 매혹하며 호흡을 맞췄다.

   특히 상처받은 감수성과 강인한 남성성을 오가야 하는 고난도의 음악적 변화를 사무엘 윤은 탁월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2010, 2011년에 이어 올해도 한스 노이엔펠스가 연출한 바이로이트 '로엔그린'의 헤어루퍼 역도 맡고 있다.

   조역 가수들의 가창도 모두 훌륭했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에버하르트 프리드리히가 이끈 페스티벌 합창단이었다. 유령선 선원들(세일즈맨들)과 노르웨이 선원들(선풍기 회사 직원들)이 대결하는 3막 초반의 긴 합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음악적 완벽함과 연기의 활력을 보여주었다.

   이중 배역으로 바이로이트 축제를 구원한 것은 사무엘 윤만이 아니다. 2008년부터 5년째 '파르지팔'의 주역 구르네만츠를 노래하고 있는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서울대 교수)도 마찬가지.

   현재 바이로이트에서 공연되는 모든 작품 가운데 연출 면에서 가장 큰 호평과 주목을 받는 스테판 헤르하임의 '파르지팔' 8월 11일 공연은 독일 전역의 영화관에서 동시에 실시간 생중계되며 TV로도 중계될 예정이다.

   '파르지팔' 프로덕션이 이처럼 극찬을 받고 관심을 끌게 된 데는 연광철의 공이 특별히 크다. 지난 5년 사이 세 주역 가운데 파르지팔과 쿤드리 역의 가수들은 교체됐지만 구르네만츠 역의 연광철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확고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공연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엄청난 양의 모놀로그를 소화해야 하는 이 어려운 배역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주어졌다. 연출가 마르탈러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르케 왕 역을 맡아왔던 관록의 베이스 로버트 홀이 건강상의 이유로 출연할 수 없게 되자 페스티벌 측에서 급히 연광철에게 이 역을 부탁한 것. 사실 마르케 왕 역은 전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연광철을 인정하게 만든 그의 주요 배역들 중 하나다.

   7일 이 공연을 앞두고 준비를 위해 극장으로 들어가던 그는 이 역을 언제나 기꺼이 노래한다고 말했다.

   "마르케 왕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배역이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노래가 한없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니 관객들이 반가워하기도 하고, 또 정서적으도 연민과 공감을 얻는 인물이니까요."
처음 이 역을 불렀을 때에 비해 지금은 소리와 표현에 훨씬 깊이가 생겼음을 스스로 느낀다고 말하며 돌아서서 극장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게시물 검색